부는 그 자체로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우리 영혼을 반영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타파해야 할 것은 부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에겐 인색함과 탐욕으로, 또 누군가에겐 부러움과 질투로 나타나게 되는 우리 마음의 악덕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그의 자아가 더욱 커져, 세상에 그의 자아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부와 돈은 권력이다. 내가 더 많은 돈을 가질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은 더 많아지고, 그래서 세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혹은 삐뚫어진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더 큰 선한 영향력, 더 큰 악, 더 큰 삐뚫어짐으로 세상에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일이 어렵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나보다. 더 가진 사람은 심판 때 더 가혹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덜 가진 사람들은 조금 더 관용적인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덜 가진 위치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클레멘스가 말한 또 다른 악덕들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부러움과 질투이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들은 불공정을 아주 싫어하는것으로 보인다는 실험결과를 본 적이 있다. 똑같은 일을 바로 옆의 케이지에 있는 두 원숭이들에게 시키고, 한마리에게는 오이를 한마리에게는 포도를 그 일에 대한 보상으로 주었을 때, 포도를 받은 원숭이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으나, 옆 케이지에 있는 원숭이가 같은 일을 하고 포도를 받는 것을 본 원숭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이를 받고 화를 내고 오이를 집어 던졌으며, 그 후에는 시키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정당한 댓가라는 것은 어쩌면 절대적이지 않은 상대적인 가치로 생각 되는 것 같다. 비슷한 일을 하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이정도의 소득을 얻는다면, 나도 이만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장류로서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소득 분배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하는지에 따라 누구는 훨씬 많은 이익을 얻기도 하며, 우리는 이것을 운이라고 부른다. 옆 케이지에서 다른 원숭이가 일을 하고 포도를 받는 것을 보았던 원숭이처럼, 우리 인간들도, 누군가 부자가 되었다면 이를 따라해보기도 하지만, 꼭 같은 결과 -포도-를 받게 되지는 않는다. 이미 시장은 포도를 받은 원숭이들에게 점령당해 다른 원숭이들이 들어올 여지가 없거나, 이미 한물 간 사업이 되었거나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오이를 받은 그 원숭이처럼 그나마 받는 오이를 내던지거나, 하던 일을 중단할 수도 있다. 이를 알렉산더의 클레멘스는 부러움과 질투라는 악덕이라고 규정한다.
우리 인간은 원숭이가 아니다. 우리가 동물들과 다른것은 하느님의 영이 우리에게 깃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깃들인 주님의 영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원숭이와 다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부러움과 질투라는 감정들을 우리 안의 하느님의 영으로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인색함과 탐욕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포도를 받은 그 원숭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포도를 받아 옆 케이지의 오이를 받는 원숭이와 나눌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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